제목 [조선일보]'야매치과' 가던 엄마 생각에… '무료 치과 버스'가 달린다  
글쓴이 제니튼 날짜 2016-06-22 오후 3:33:00 IP 58.149.236.54

'야매치과' 가던 엄마 생각에… '무료 치과 버스'가 달린다


윤형준 기자 성남=권선미 기자






입력 : 2016.06.20 03:12


[고아원·탈북 청소년 학교 등 찾는 치과의사 주지훈]

- 이 악물고 공부하고 돈 모아
아버지는 막노동… 형편 어려워… 선생님이 학비 보태주고 책 사줘
- 5억짜리 치과 버스
기업 후원 받고 동료들 십시일반… 年운영비 5000만원은 자체 해결


지난 9일 오전 경기 성남시에 있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하늘꿈학교' 주차장. 45인승 버스를 개조한 이동식 치과 진료시설 '해피 스마일 치과 버스'가 서 있었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니 치과 진료용 의자 2대에서 흰 가운을 입은 치과의사들이 탈북 학생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치과의사 주지훈(45)씨가 "치아 관리를 잘했네"라고 칭찬하자 한 학생이 "진짜 치과에서 진료받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9일 오전 경기 성남시의 탈북청소년 대안학교‘하늘꿈학교’에서 치과 의사 주지훈씨가 학생들의 치아를 검진하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경기 성남시의 탈북청소년 대안학교‘하늘꿈학교’에서 치과 의사 주지훈씨가 학생들의 치아를 검진하고 있다. 주씨는 2012년부터 이동식 치과 진료시설‘해피 스마일 치과 버스’로 한 달에 두 차례씩 고아원과 탈북자 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1300여 명의 소외계층 학생의 치아를 검진하고 치료했다. /김지호 기자


해피 스마일 치과 버스는 평소 치과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의료 소외지역 어린이들의 무료 진료를 위해 주씨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2012년부터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이동식 치과다. 매달 두 차례씩 고아원이나 탈북자 학교,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찾아 스케일링과 충치 치료 같은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이날 무료 진료 활동엔 치과의사 6명과 치위생사 등 의료진 10명이 참여해 37명의 탈북 학생을 진료했다. 지금까지 약 1300명의 소외 계층 학생이 이 버스에서 검진과 치료를 받았다.

1971년 서울 구로구에서 태어난 주씨는 학창 시절 가난하게 자랐다고 한다. 주씨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해외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고 한다. 주씨는 "아버지 일감이 없을 때는 중·고등학교 학비도 못 낼 정도였다"며 "선생님들이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 참고서를 사주지 않았더라면 고등학교 졸업도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해피 스마일 치과 버스

해피 스마일 치과 버스


다행히 주씨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는 과외를 비롯한 사교육이 금지돼 있던 시기였다. 주씨는 EBS 교육방송을 보며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서울대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치대를 선택했다"면서 "지금처럼 고액의 사교육이 기승을 부렸다면 나 같은 흙수저 출신이 치대에 입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주씨는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된 후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30대 후반에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찾고 나서 "나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 때문에 정식 치과를 못 다니고 불법 진료를 하는 '야매 치과'를 전전했던 어머니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치과 버스라는 아이디어는 군의관 시절 진료용 의자가 하나 있는 버스로 장병 순회진료를 했던 경험에서 나왔다.

무료 진료를 하는 치과 버스를 운영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일단 돈이 많이 들었다. 버스를 사서 내부를 진료용으로 개조하고, 필요한 치과 장비를 갖추는 데만 5억원이 들었다. 이 중 3억5000만원은 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았다. 나머지 1억5000만원은 주씨와 뜻을 같이하는 치과의사들이 돈을 모아서 해결했다.

한 달에 두 차례씩 무료 봉사활동에 필요한 장비 유지비와 각종 의료비품 등 운영비도 1년에 5000만원이 들었다. 주씨는 서울대 치대 후배인 지대경(45)씨와 함께 어린이 구강용품을 만들어 파는 제니튼이란 업체를 세우고, 여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1년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사업과 봉사활동에 주력하기 위해 주씨는 원래 운영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지금은 봉직의(pay doctor·월급 받는 의사)로 일하고 있다.

주씨는 "봉사의 기쁨을 깨달은 지금이 돈을 모으기만 했던 30대 시절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봉사를 시작한 이후 주변에 착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초기엔 자원봉사자 를 찾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매번 오는 봉사자만 10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수 김윤아(자우림 리드 보컬)씨의 남편인 치과의사 김형규씨도 주씨의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주씨는 "학창시절 등록금을 보태준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무료 진료를 받은 학생들이 나중에 성공해서 더 크게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했다,